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문단 편집) == 한국의 반응 == 위의 발표 내용에도 나오듯이 회의 결정사항의 본질은 '한반도의 단일 임시정부' 수립이었고 그 전제로 나온 '신탁통치'도 길어야 5년 이내의 한시 조건이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위에 보면 알겠지만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임시정부 참가 하에라는 구절도 들어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유독 '신탁통치'라는 부분이 부각되어 역풍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한국 내 정치진영은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 수용 여부를 놓고 찬탁, 반탁으로 극명히 나뉘었다. 찬탁은 1) 통일 임시정부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좌우 합작론자들(예: 김규식, 여운형)과 2) 좌익 공산진영(예: 박헌영)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비해 반탁은 1) 외세 개입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진영(예: 김구)과 2) 통일 임시정부를 공산화의 수단으로 인식한 반공진영(예: 이승만)이 대표적이었다. 찬탁 진영은 모스크바 3상회의의 본질이 '통일 임시정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신탁통치'가 부각되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여론전에서 '찬탁=공산주의=외세 동조'라는 이미지가 씌워진 상태여서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모스크바 3상회의의 내용을 처음 보도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했고, 미국은 즉각 독립을 주장했다"는 내용의 오보'''를 전하는 [[신탁통치 오보사건]]이 터지면서 여론은 찬탁 진영에게 더욱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신탁통치를 제일 먼저, 그것도 2차대전이 끝나기 전부터 주장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중대한 사실 왜곡이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의 내용을 왜곡보도한 동아일보 오보의 출처가 [[반공주의|반공]] 성향이 강한 미국의 '성조지(Stars and Stripe)'의 보도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즉각 독립을 주장한 쪽은 소련과 중화민국이었고 신탁통치를 주장한 쪽은 영국과 미국인 것을 생각해 보면...''' 결국 모스크바 3상회의를 기점으로 좌우 양 진영의 대립은 돌이키기 어려워졌고 2년 후 [[남북분단]]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